[연출노트-5탄] 곽정환PD "상업성 저항 '추노' 만들다 두번 쫓겨날 뻔"

기사입력 2012-10-04 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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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이우인 기자] 곽정환 PD는 자신의 미니시리즈 세 번째 작품 '추노'로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주인공 장혁은 연기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주·조연 할 것 없이 '추노'의 모든 출연진이 재조명됐다.



곽 PD의 미니시리즈 입봉작 '한성별곡 - 正'(이하 '한성별곡')은 연출 작가 배우가 모두 신인급임에도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았다. 곽정환 PD에겐 여느 드라마 PD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만의 연출 스토리를 가감 없이 옮긴다.



◆ 고3 담임이 바꿔준 인생



내 인생은 대학교 입학 때부터 바뀌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고3 때 담임이 2지망으로 적어준 학과였다. 1지망은 국제경제학과였다. 당연히 붙을 줄로 자신했다. 하지만 1지망은 떨어지고 2지망에 붙었다. 재수하기 싫어서 그냥 다녔지만, 전공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1지망에 붙었다면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정치가 매우 혼탁하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일지를 꾸준히 고민했다. 보람을 느끼면서도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생각했다. 그중 영화의 장르적인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픈 분야였다. 그래서 선택한 직업이 드라마 PD였다.



방송국에 입사했지만, 처음에는 교양 부서로 발령이 났다. '추적 60분' '일요스페셜' 등의 조연출로 일했다. 보도국 발령으로 1년간 기자들과 뉴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이 내게 많은 영향을 줬다. 다른 드라마 PD, 작가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의 밝고 어두운 부분에 대한 정서적인 교감뿐 아니라, 어떤 게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논리적·이념적 부분을 담아내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떤 분들은 내 드라마를 드라마가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입봉작으로 쓴 4부작 대본은 다큐멘터리 같다는 이유로 방송이 불발된 적도 있다. 이제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드라마에 녹여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다름을 나만의 장점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소양과 시청자와의 소통 방식을 가진 드라마 PD는 별로 보지 못했다. 최근엔 후배 모완일과 박현석 정도가 나와 생각이 비슷한 것 같기도. 



◆ 길고 고됐던 조연출 생활 



나를 포함한 KBS 24기들은 조연출 기간이 유난히 길었다. 역사상 최대로 긴 기수였다. IMF 직전 기수라 다음 기수들을 굉장히 조금씩 뽑았다. 우리 땐 45명이 KBS에 입사했는데, 25기부터는 1년에 많이 뽑아봤자 고작 5명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팀엘 가도 우리가 항상 막내였다. 내 작품을 만들기까지 만 9년이 걸렸다. 



'금쪽같은 내새끼' '저 푸른 초원 위에' '제국의 아침' '상두야 학교가자' 등 다양한 장르의 조연출로 일했다. 단막극은 '드라마시티-참빛'과 '그들의 진실, 진실한 그들' 두 작품이 전부였다. 억울했다. 여러 협의회를 통해서 조연출 기간에 대한 지나침을 어필했다. 26기부터 조연출 기간이 만 6년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입봉작은 '한성별곡'이었다. 이 작품 때문에 드라마국에서 쫓겨날 뻔했다.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이유 때문. 당시 모 간부가 '한성별곡'을 연출했다는 이유로 나를 드라마국에서 어떻게든 내쫓겠다고 드라마국장과 CP들한테 말했다고 한다. 그는 나와 일한 적도 없고, 얼굴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신인작가, 신인연출, 신인배우가 만드는 작품을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편성했다는 게 불만이었다. 



신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용기나 패기, 실험성에 대해서는 묵살했던 것. '한성별곡'은 형식적·내용적으로 대단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PD 협회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한성별곡'을 사랑하는 마니아도 많았다. 그런데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이유로, 내가 그토록 꿈꿔온, 더욱이 9년 동안 조연출로 버틴 끝에 이룬 드라마 연출 꿈을 짓밟혔다.  





◆ '추노' 만들다 두 번 쫓겨날 뻔  



'한성별곡' 이후 만든 작품은 '전설의 고향 - 구미호'였다. 갑작스럽게 만들게 된 작품이었다. 다른 PD들이 4~5달 준비하던 작품을 내게는 2달 만에 준비하라고 했다. 위에서 시켜서 만든 작품이었지만, 내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 작품엔 특별히 추구하는 방식이 있다. 원 제목이 '구미호'면 제목 앞 혹은 뒤에 연출자의 방향성을 담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제목이 '우리 안에 누구인가 구미호가 있다'였다. '한성별곡' 또한 작가가 정한 제목 뒤에 '正'을 달았고, '그들의 진실' 또한 '진실한 그들'을 덧붙였다. 천성일 작가는 '도망자'라 지었지만, 나는 그 뒤에 'Plan.B'를 붙였다. 



'추노'에도 내가 지정한 방향성이 있다. '추노'라 하면 '봄 호랑이(春虎)'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추노' 뒤에 한자(推奴)를 붙이고, '도망 노비를 쫓다'라는 문구를 흐릿하게 달았다. '추노' 관련 홍보와 보도자료의 절대 원칙이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추노'를 더욱 강렬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성별곡'과 마찬가지로, '추노'를 연출할 때도 두 번이나 쫓겨날 뻔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성공한 연출자라고 하는 내게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고, 그걸 딛고 일어섰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한성별곡' 때가 어떻게 보면 상업성에 저항한 최후의 시도가 아니었을까? '한성별곡'으로 쫓겨날 뻔한 나를 보면서 당연히 아무도 그런 시도를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드는 PD



상업적인 논리에 의해 나는 청춘의 꿈과 삶의 목적을 빼앗길 뻔했다. 한편으로는 '한성별곡'과 '추노'를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1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평가를 받은 '도망자'의 의미도 크다. 월드스타 비(정지훈)를 놓고 아시아 합작이 어떤 형태로 가능할지, 한국 드라마가 어떻게 하면 글로벌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를 시도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내게도 첫 시도였다. 하지만 2달 만에 해외 4개국에서 7회 분량을 찍는 것부터 말이 안 됐다. 1회 분량을 찍더라도 2달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고, 촬영하려면 한 달은 걸린다. '도망자'는 적어도 6~8개월은 준비했어야 했다. 물리적으로 힘든 프로젝트에 도전한다는 의미는 있었다. 준비를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고, 교훈이 되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잘하는 장르나 형식에는 굳이 도전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남들이 안 하는 장르나 내용, 형식에 도전하는 게 시청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이는 대중문화인으로서의 사명감이다. '한성별곡'과 '추노'의 경우, 같은 사극이지만 기술적·형식적으로 큰 변화를 주려고 했다. 아시아 최초로 미니시리즈에 '레드원 카메라'를 도입했다. 



방송사 PD로 산 지도 벌써 16년. 내게 드라마는 세상에 맞서 싸우는 창과 방패다. 자본의 논리와 싸워서 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했다. 돈 문제와 관련된 모든 일에 고통스러워하면 안 된다. 특히 대중문화가 전 세계로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상업적 논리가 극대화된 지금, 연출 입장에서 맞서야 하는 자본의 논리는 굉장히 심각하다. 후배들이 잘 견뎌냈으면 한다. 





◆ 못다 한 이야기...



- 연출작 시청률 순위: '추노'가 1위. 35%가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어 '전설의 고향' '도망자' '한성별곡' 순.  



- 최고의 작품: 만들고 쫓겨날 뻔한 '한성별곡'.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 아쉬운 작품: '도망자'. 내용이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추노' 팀이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것 같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게 패착. 



- 궁합이 잘 맞는 작가: 신인작가를 선호한다. 박진우, 천성일 모두 신인이었지만 잘됐다. 



- 앞으로 호흡을 맞추고 싶은 작가: 4년 전부터 키운 지금의 작가. 내년 방송을 목표로 시리즈 세 개를 기획 중이다. 



- 같이 호흡을 맞춘 최고의 배우: 성실성과 노력은 장혁. 귀찮을 정도로 연출자를 괴롭히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줬다. 타고난 순발력과 감각은 정지훈. 그는 예술이다. 



희생적인 측면에서는 이나영이 으뜸. 여배우 중에서 그렇게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다.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굉장히 애썼다. 촬영장에서 보여준 모습이 MBC '무한도전'에도 나왔다. 다니엘 헤니는 자신한테 엄격한 반면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한 매너남이다.



- 우려했지만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배우: '추노' 때 오지호. 모든 사람이 그가 사극에 어울리지 않을 거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사적으로 그를 알았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지호가 만든 송태하 장군은 정말로 멋있다. 우려를 뛰어넘어 뿌듯했다. 



- 다시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 다니엘 헤니와 정지훈. 미안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다. 정지훈이 연기대상을 받는 대박 작품을 꼭 만들고 싶다.  



-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배우: 어미 새가 모이를 주기를 바라는 아기 새들처럼 수없이 많은 단역, 조연, 신인배우, 중견배우. 모든 분에게 기회를 다 드리지 못해 볼 때마다 미안하다. 



-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배우: 이미 스타나 거물이 돼서 어쩌다 한 번씩 작품을 해도 품위유지에 지장이 없는 배우를 굳이 내가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 신인 캐스팅 선호하는 이유: 신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최선을 다할 준비가 돼 있다. 캐스팅 결정도 빨리 하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작품과 캐릭터 연구에 최대한 쏟을 수 있다. 하지만 스타는 캐스팅하느라 어쩔 때는 1년도 걸린다.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캐스팅이 아니면서, 캐릭터를 연구할 시간을 거치지 못한 채 촬영에 쫓기는 일이 허다하다. 시간 낭비다. 



-연출로서 가장 뿌듯할 때: 어려운 상황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둘 다 잡았을 때. 목표이자 보람이다. 



-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연출자: 표민수, 김규태 선배. 표민수 선배에게는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대한민국 최고. 김규태 선배는 천재적인 영상미. 선배의 영상은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 연출은 언제까지: 이병훈 선배처럼 선배들이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기길 바란다. 이 구조를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연출직을 놓겠다는 고민은 하고 있다. 





곽정환 PD는? 1971년생 /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 1997년 KBS 공채 24기 입사 / 대표작 - 한성별곡 - 正, 추노, 도망자 Plan.B / 제23회 한국PD대상 TV부문 작품상,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드라마 부문 문화체육관광부장관표장, 2010년 한국방송대상 대상, 작품상, 연출상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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